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 히틀러 (문단 편집) ==== 음악 ==== 음악에 대한 관심과 소양도 평균 이상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일반인 수준에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이지, 히틀러는 기본적으로는 고전시대보다는 낭만주의 이후 음악을 더 좋아했고 당대에 변화 발전하던 20세기 이후의 대중성 높은 [[현대음악]]은 영 탐탁지 않아 했으므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히틀러의 음악에 대한 이해는 미술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장르나 특정 시대의 음악만을 추구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히틀러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이었다. 엄청난 바그너 팬이었으므로 빈 시절부터 바그너의 공연이라면 빼먹지 않고 오페라하우스를 꼭 찾아갔다고 한다. 바그너의 초기 작품보다 게르만 신화가 나오는 후기작품을 편향적으로 좋아해서 바그너의 작품을 순수하게 좋아했다고 여기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바그너 후기 작품이 훨씬 깊이 있고 바그너 음악의 정수를 담고 있으므로 아돌프 히틀러의 바그너에 대한 경도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4년만에 휴가를 받아서 후방에 가게 되었을 때는 동네 오페라 극장에 들렀다가 바그너는 안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나와버린 일이 있을 정도로 히틀러의 바그너 숭배는 중증이었다. 다만 아돌프 히틀러가 바그너 작품 가운데서 가장 좋아한 것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로, 바그너의 전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신화가 사용되지 않은 작품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쉬운 곡을 쓰지 못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바그너가 의도적으로 평이한 화성과 선율을 사용하여 작곡한 곡으로,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 리스트는 아돌프 히틀러의 후원자이면서 추종자이기도 했다. 바그너 이외의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가운데에서는 [[안톤 브루크너]]를 두 번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세 번째로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치 독일에서 제국음악회장을 하면서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전후 나치 협력문제로 비판을 받는다. 이렇듯 1930년대 기준으로 조금 올드한 독일 낭만파 음악을 좋아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독일 작곡가로 꼽히지만 작법에서는 고전주의적인 형식성과 명료성을 상대적으로 중시했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작품의 경우에는, 젊었을 때는 구색 맞추려고 듣는 수준이었다가 만년에야 좀 즐겨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히틀러의 개인 취향과는 별개로 베토벤의 곡들은 나치 프로파간다에서 아주 잘 써먹었다. 역시 지극히 가볍고 경쾌한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Die lustige Witwe)'[* 마지막 남녀 주인공이 춤추는 [[https://youtu.be/akPOlcp4z8c|왈츠]]가 유명하다.]을 좋아했으며, 이는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던 작품이라고 한다. 자기가 특히 관심있는 분야나 대상이 아니면 별다른 체계적인 지식이나 선호가 없었던 히틀러답게 독일권 이외의 다른 문화권의 작곡가와 음악에 대한 이해는 그렇게 깊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히틀러는 인종차별 정책에 따라서 슬라브인들을 [[운터멘쉬|열등한 민족]]으로 여겨 그들을 탄압했지만, 정작 아돌프 히틀러 자신은 슬라브인 음악가인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레코드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반면 1920~3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재즈]]에 대해서는 청승맞은 선율과 리듬에 맞춰 몸이나 배배 꼬고 돌리는 열등한 깜둥이 음악으로 취급했다.[* 재즈에 대해서 히틀러와 나치당 인사들이 가진 인식은 "더러운 흑인들이 여자들을 유혹할 때나 트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나치 독일 시대를 다룬 독일 드라마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를 보면 주인공들이 모여서 재즈 음악을 틀며 놀다가 게슈타포가 오자 재즈 음악을 재빨리 꺼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나치 독일은 재즈 음악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여 듣는 사람이 있으면 처벌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모리스 라벨]]이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같은 서구권의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은 재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꽤나 남겼고, 오늘날 재즈가 1920년대 이후의 서양음악에서 가장 의미있는 발전을 이룬 장르로 평가받는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히틀러다운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9세기 최고의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 꼽히는 [[주세페 베르디]]의 음악은 가끔 가다가 듣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베르디의 1급 음악보다 바그너의 2급 음악이 100배 낫다는 식으로 폄하했으며, 황실 오페라 극장의 베르디 공연보다는 동네 극장의 바그너 공연을 듣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길거리 악사가 베르디의 대표적인 아리아인 "여자의 마음"을 연주하는 걸 보고, 바그너의 음악이라면 저런 천박한 자가 연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베르디를 좋아하던 젊은 시절의 절친한 친구인 아우구스트 카비체크에게 '''너의 베르디'''도 참 안되었다고 혀를 찬 일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베르디 음악 중에 괜찮다고 평가한 건 아이다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군]]의 군가인 [[군함행진곡(일본)|군함행진곡]]을 듣고 만족해서 자주 흥얼거렸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